9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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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죄를 짓고 바닷가로 유배되었을 적에 쌀겨마저도 부족하여 밥상에 오르는 것은 상한 생선이나 감자ㆍ들미나리 등이었고 그것도 끼니마다 먹지 못하여 굶주린 배로 밤을 지새울 때면 언제나 지난날 산해진미도 물리도록 먹어 싫어하던 때를 생각하고 침을 삼키곤 하였다. 다시 한번 먹어보고 싶었지만, 하늘나라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처럼 까마득하니, 천도 복숭아를 훔쳐 먹은 동방삭(東方朔)이 아닌 바에야 어떻게 훔쳐 먹을 수 있겠는가.
마침내 종류별로 나열하여 기록해 놓고 가끔 보면서 한 점의 고기로 여기기로 하였다. 쓰기를 마치고 나서 《도문대작(屠門大嚼)》이라 하여 먹는 것에 너무 사치하고 절약할 줄 모르는 세속의 현달한 자들에게 부귀영화는 이처럼 무상할 뿐이라는 것을 경계하고자 한다. -허균의『성소부부고 25권』「도문대작 인(引)」중
한국음식을 말하다 2부→ 한국고전번역원 | 원문 | 번역 전체
[주D-005]도문대작(屠門大嚼) : 푸줏간 앞을 지나가면서 입맛을 다신다. 이는 실제로 먹지는 못하고 먹고 싶어서 먹는 흉내만을 내는 것으로 자족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桓譚新論, 曹子建集》
9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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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기형도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다. 여섯 개의 줄이 모두 끊어져 나는 오래 전부터 그 기타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때 나의 슬픔과 격정들을 오선지 위로 데리고 가 부드러운 음자리로 배열해주던' 알수 없는 일이 있다. 가끔씩 어둡고 텅빈 방에 홀로 있을 때 그 키타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나는 경악한다. 그러나 나의 감각들은 힘센 기억들을 품고 있다.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가끔씩 어둡고 텅 빈 희망속으로 걸어들어간다. 그 이상한 연주를 들으면서 어떨 때는 내 몸의 전부가 어둠 속에서 가볍게 튕겨지는 때도 있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9월 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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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ésert> Hortense Vlou
Il se sentait si seul dans
ce désert
que parfois il marchait
à reculons
Pour voir quelques tracs devant
lui.
완전하게 익히지 못한 언어란 참 쉽게도 까먹는구나.
번역으로 읽었을 때는 그냥 그랬는데 원문 어순이 조금 더 강렬해서 사전 찾아보려고 메모.
그런데 인터넷에 떠도는 번역에서는 tracs를 발자국으로 해석한 모양인데 자취, 흔적, 발자국, 흉터는 trace고 trac는 집에 있는 소사전에는 구어로 겁, 공포심으로 나오고 온라인사전에는 stage fright(무대 공포증)이라고 한다. e를 없애고 s를 붙이던가? 음 기억나지 않음=_=;
9월 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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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백석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디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씰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